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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주거문화사

한국인의 주거 발생 배경

by wlqwndls@53@ 2022.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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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구상에 살아 있는 모든 동식물은 자연환경 속에 그대로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자연환경에서 생물체들은 여러 가지 종류의 자기방어책을 마련합니다. 그들이 처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입이다. 꾸준하고 반복적인 도전 속에 지구의 생명체들은 자신을 지켜줄 안전한 공간을 만들게 됩니다. 많은 생명체 중 인간은 가장 안전한 물리적 공간으로 '집'을 창조했습니다.

 

태초에 인간의 주거 형태는 은신처의 역할로서 자연발생적인 동굴을 선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동굴은 구석기 시대 인간에게 닥친 각종 문제를 피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추위, 더위, 비바람, 눈, 사나운 짐승 등 따위를 피해야 했으며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무리를 지어 떠돌아다니면서 선택할 수 있는 은신처로 자연 동굴만큼 안전하고 좋은 장소는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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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시대 후기에서 신석기 시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는 자연환경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인간은 또 도전과 적응의 시기를 거쳤습니다. 빙하기가 지나고 기상 변화로 다시 따뜻한 시기가 도래하자 인간은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도구를 제작하여 이용하는 등 생활상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따뜻한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많은 곳을 이동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것입니다. 바로 농경 생활의 시작이었습니다. 농경 생활이 시작됨에 따라 농경 기구의 발달과 더불어서 주거생활도 함께 개선되었습니다. 농경사회는  혈연이 한집에 살았고 더 나아가 한 부족이 마을을 이루어 살았습니다.

 

 

신석기 시대 주거 생활의 모습은 움집입니다. 바닥은 원형 모서리가 있는 사각형으로 중앙에는 화덕이 있었습니다. 화덕은 음식을 익히고 불씨를 보관하고 난방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주거 형태는 이른바 자연적인 적응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이 최초로 물리적인 힘을 가해 만들어 지은 집의 출연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신석기 시대 이후 청동기, 철기시대로 전환되면서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생산 도구들이 다양하게 변화했습니다. 이에 따른 농경 생활의 생산량이 증가하였으며 주거생활도 활발하게 발전되었습니다. 당시 집터 유적은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집터의 형태도 구석기, 신석기시대보다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측면에서 볼 때 인간의 물리적인 힘으로 만들어진 주거는 움막집에서 시작하여 북서풍을 막아주는 양지 좋은 곳의 야산과 물이 풍부하고 식량을 구하기 용이한 평야 지대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전통적 가옥의 형태와 마을을 이루고 사는 배산임수 취락의 형태로 발전하였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농촌 마을의 자연 추락 구조와 비슷한 것으로 보아 여기서 유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농경 생활이 급속하게 발전됨으로 인해 거처가 없이 이동하는 시대에서 점차 정착 생활이 확대되면서 식량을 보존해야 하고 취사를 위한 불의 보존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또한 추위와 더위를 피하기 위해 은신처의 정착이 필요했습니다.

 

 

기존의 움집에서 볼 수 있었던 중앙의 화덕이 안쪽으로 옮겨지고, 식량 등을 보존하기 위한 장소도 별도로 구덩이를 파서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 움집의 형태를 유지한 지상 가옥도 이때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청동기, 철기시대가 도래하면서 움집의 집터도 기능적으로 변화했습니다. 즉 움집의 깊이가 얕아지고, 북쪽 지방의 경우에는 방 안의 공기를 따뜻하게 하기 위해 온돌식 난방이 주거 문화로서 자리 잡고, 남쪽 지방에는 겨울철이 짧고 따뜻한 기간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관계로 시원한 생활을 하기 위해 바닥의 재료를 나무로 만든 마루를 사용하였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과도기를 거치면서 더 좋은 환경을 찾아 주거를 이동하는 사람들로 인해 생활양식이 전파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으로 인해 온돌과 마루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살림집의 기본 형태인 한옥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주거에 안주하지 않고 인간의 다양한 욕구에 따라 편리하게 개선되고 오랜 기간을 걸치면서 구조적으로 많은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오늘에 이르러서 집은 과거에 단순한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피난처의 역할을 했던 주거의 개념이 아닌 가족들이 편안하고 단란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의 쉼터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국의 전통 가옥과 마을
한국의 전통 가옥과 마을

 

이러한 주거 문화 발전과정은 유구한 역사 속에서 전통적인 풍속 및 관습을 바탕으로 음양오행설에 의한 풍수지리, 도참사상과 유(儒:선비), 불(佛:부처), 선(仙:신선) 사상 등 사회 · 문화적 영향을 배경으로 변천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정리해 보면 구석기시대의 수렵, 어로, 채집 생활은 주거 이동 생활로 자연 동굴을 이용하였고, 신석기시대 후기에 인공 주거의 출연으로 움집이 나타났습니다. 청동기, 철기시대에 이르러 본격적인 농경사회가 시작되면서 정착 생활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반 움집 등 마을이 형성되었습니다.

 

 

고대국가 시대에는 지상 주거의 출현으로 온돌과 마루가 발달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문벌 귀족의 등장과 고려청자의 사용 등 화려한 귀족 주거가 나타났습니다. 조선시대 때는 유교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신분 계층에 따라 조선 전기에는 양반 계층의 사대부 주거가 나타났고, 조선 중기에는 씨족 마을 형성, 조선 후기에는 부농 주거와 서민 주거의 특징이 나타났습니다.

 

 

개항(1876) 이후에는 외래문물의 도입과 식민지 지배에 의해 일시적 주거 문화가 파생되었습니다. 해방 이후 50~60년대 판잣집과 재건주택이 형성되었습니다. 70년대에는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농촌을 중심으로 슬레이트, 함석 등이 빠르게 확산하여 초가지붕이 국적 없는 집들로 개조되었습니다. 80년대 이후 소득이 증가하고 핵가족화에 따른 가구 분리와 도시 인구의 집중에 대한 해결 수단으로 아파트 문화가 생겨났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부 서양 건물과 문화를 받아들이기는 하였으나 우리 민족은 생활양식, 전통문화의 보존 등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세계사에서도 볼 수 없는 독창적인 주거 문화를 창조하였습니다. 이렇듯 우리 민족의 주거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정학적 특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어느 민족과도 구별되는 특수성을 지닌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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